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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34년을 근무하면, 국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포장을 수여받고 36년부터는 훈장이 수여된다고 한다.
이 내용은 36년차 공직생활을 끝으로, 연말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이정문 성남시 수정구청장에 관한 이야기다.
이 청장은 1965년에 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 5남매 중에 4남으로 태어났다.
영등포 우체국에서 전화교환원으로 공직생활을 했었던 그의 어머니는 결혼 후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모래내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해야만 했다.
덕분에 이 청장은 그 당시 근처에 있는 은좌극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영화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성남으로 1970년에 이주하여, 제일초교시절부터 글짓기를 매우 좋아하는 문학 소년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 청장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때 뜻하지 않은 아버지의 주검을 맞이하게 됐고, 그로 인해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 온 그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대학진학이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결국 실업계인 안양공고 기계과에 입학하였다.
이 청장이 공무원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과거 결혼을 약속한 현재의 배우자가 본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면, 뚜렷한 직업이라도 좀 갖고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강력한 권유에서 비롯됐다.
이처럼 공무원이 된 이 청장은 1989년에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동사무소에 처음 임용된 이후에, 성남시청 공보관, 법무과장, 4차산업추진단장, 재개발재건축 추진단장, 헁정기획조정실장을 거쳐, 최종 지금의 수정구청장의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이정문 수정구청장은 동료, 후배 공무원들에게 전하는 말을 통해 “1990년 성남동에 근무할 때, 홍수피해 이재민들을 돌보느라 집에도 못가고 삼일동안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결국 집에 가보니, 내 집 주변 골목조차 온통 물에 잠겨있었습니다.”
“1992년 분당출장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집에 가는 날과 근무하는 날이 반, 반이자 전부였으므로, 아빠 얼굴 한 번 보여주겠다고 아내가 딸아이를 직접 업고 사무실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1994년 수진1동에서 체납세 징수실적 15등을 1년여 만에 3등으로 끌어올렸던 일, 그 과정에 눈길에 미끄러져 죽을 뻔 했던 순간, 일산 또는 대전 등의 지방으로 직접 돈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었지요.”
“2000년 분당구청에서 성남시 최초로 전자입찰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여러 기관을 방문하여 가르쳐줬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2001년 역시 분당구청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보다 더 효율적인 행정관리를 위해 기관·부서별로 지급하던 급여를 성남시청에서 일괄 지급하도록 건의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분당구에서만 동까지 먼저 시행하기도 했었죠.”
“2004년 수정구청 청소행정팀에서 쓰레기 불법투기지역에 CCTV를 설치하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면서,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면 안 된다고 음성안내를 하자, 그 순간 깜짝 놀라며 돌아서시던 어르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네요.”
“같은 해에 환경지킴이 청소봉사단을 처음 기획하여 발족하고, 확산시켰던 일도 생각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어느 순간 말도 안 되는 억지로 감사원으로 2개월간 출, 퇴근하며 하루 종일 감사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일, 행안부 조사관실에서마저 똑같이 역시 2개월간 출, 퇴근하다시피하며 조사를 받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지나온 과정들을 모두 다 돌이켜보니, 여러 가지 성과나 보람된 일들이 대부분 실무자일 때 이뤄냈던 것 같습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 두 가지 사항만 꼭 우리 동료, 후배 공무원 여러분들께 당부하고 싶네요.”
“뒤늦게 알게 된 공직의 노하우 하나, 모든 일의 성공이 결코 책상 앞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하좌우 동료들과의 적절한 스킨십은 일의 색깔이 되고, 그 과정에 녹아들어 성공의 발판이 됩니다.”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하기 힘들었던 노하우 하나, 모든 일의 중심은 나입니다.”
“내가 기획한 일은 결재권자인 상사보다 내가 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의견충돌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싸워서라도 관철시키십시오.”
“그것이 진정으로 성남시와 시민을 위한 길입니다." 라는 내용을 남겼다.
이정문 수정구청장은 지난 36년간의 기나긴 공직생활을 하며 아첨도 잘 할 줄 모르고, 제 아무리 본인의 직장상사라고 할지라도 불합리한 지시나 거친 언행, 하급자에 관한 무시 등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럴 때마다 정의감에 불타 잘못된 업무관행을 바로 잡아나가며, 동료, 후배 공무원들의 든든한 바람막이이자 보디가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 결과 그는 7급에서 6급으로 진급하는 과정만 해도, 무려 1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이는 그의 대쪽 같은 곧은 성격을 잘 대변해주는 결과이며 빠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닌, 비록 느리더라도 정확하고 올바른 길을 걷는 것만이 공익을 위한 길이자 진정한 성공을 위한 길임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예이다.
아울러 또한 그는 수정구청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의 표현과도 같이 평소 동네 형님처럼 무척 인자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덕망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정문 수정구청장이 올 연말에 정년퇴임을 한다.
그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그동안 재직 중에 틈틈이 쌓아 온 학문과 경험, 그리고 각종 자격증을 토대로,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에서 다문화사회 전문가이자 지도강사로서, 제 2의 화려한 삶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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