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노 성남시의회 전 의원은 1957년에 충남 부여에서 7남매 중에 5남으로 태어났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특히 과거에는 서울과 일부 수도권지역외에는 딱히 먹고 살 길이 별로 없었다.
그로인해 결국 김 전 의원은 1973년에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낮에는 종로에 있는 세운상가에서 기술을 익히고, 밤에는 라디오,TV와 관련된 기술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오로지 기술자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워나갔다.
당시만 해도 기술을 가르쳐주는 사업장에서 별도의 월급을 제공받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김 전 의원은 이 때 누나 집에서 거처를 해, 그나마 숙식과 최소한의 용돈만큼은 자체적으로 해결 할 수가 있었다.
그 뒤에 군대생활은 당시에 북한의 국가 주석인 김일성이 제일 무서워했다는 18개월 단기 사병(방위)으로 짧고 굵게 복무하였다.
그리고 소집해제 뒤에는 각 상가마다 모든 부품을 총동원하면, 인공위성까지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그 유명한 최첨단 기술력을 자랑하는 세운상가로 복귀했다.
뿐만 아니라 이 당시 세운상가는 일찍이 성에 눈을 뜬 청소년들이 무척 수위가 높은 19금 영화 비디오 테이프 또는 성인잡지를 구매하는 것으로도 무척 유명한 곳이었다.
김 전 의원의 말에 의하면, 현재는 TV를 수리할 경우에 기판자체를 통째로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수리하기가 무척 용이하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부품 하나, 하나를 모두 다 세부적으로 정밀하게 손을 봐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보다는 더 뛰어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됐다고 했다.
과거 TV를 출장 수리할 당시에 혹시 방문한 현장에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김 전 의원이 마음에 든다고 데이트 신청을 해왔던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난 오로지 우리 아내만을 사랑했고, 그것이 또 내 신상에도 좋은 선택 일 수밖에 없었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실예로 지인의 요청에 의해 충북 음성으로 지방 출장을 가는 경우에만 하더라도, 당시에는 워낙 교통이 안좋다 보니 아침 8시에 출발하면 저녁 5시에나 도착하여, 항상 지방출장은 기본 1박 2일로 어렵게 일정을 잡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때까지만 해도 시골 인심이 상당히 후하여, TV수리를 끝마친 뒤에는 고생이 많았다는 말과 함께 수리비 외에 말린 고추를 한보따리 싸줘, 그걸 들고 오느라 애를 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1986년이 되자, 김 전 의원은 모터와 환풍기 제조에 관한 개인사업을 하기 위해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으로 이주했고, 이 때 그가 사는 거주지는 인근에 위치한 중원구 금광동이었다.
이후 1990년에는 수정구 신흥동에 있는 제1공단에서 금광환풍기라는 상호로 제조업체를 운영하다가 1996년에 경기 광주의 토지를 매입하여, 본인만의 전정한 사업체를 꾸며나갔다.
김 전 의원은 2001년에 대한민국 최초 특허부문으로 신지식인에 선정된 적이 있었다.
이 때 그는 개그맨 심형래씨를 포함한 100인과 함께, 청와대로 초청받아 김대중 대통령과 신지식인들 간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그 내용은 공중파를 통해 그대로 방송이 됐다.
이처럼 개인사업 활동을 열심히 하던 중에 유관단체장을 몇 차례 역임했고, 그로인해 주변의 권유에 의해 시의원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마저 되기도 했다.
2006년부터 성남시의회 제5,6대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김 전 의원은 황송터널 통행료폐지, 공원로 공사를 시행할 때 전선지중화 사업이 안 이뤄지는 걸 지적하여, 결국 그 작업을 개선시켜 시민혈세 100억 원을 절감한 공로를 세웠다.
그 이유는 토목공사를 할 때 지중화사업을 동시에 함께 진행하는 경우 그에 따른 공사비가 엄청나게 절감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또다시 별도의 공사를 재차 진행해야하므로, 그로인한 커다란 예산낭비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김 전 의원은 시의원으로서의 본인 밥값 이상은 충분히 해왔기에, 그만큼 긍지와 자부심이 절로 생겨난다는 말을 전해왔다.
현직 시의원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항상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에 따른 민원사항을 집행부에 잘 전달하여, 충분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여, 야간에 원만한 합의를 도출해 나가기만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이 발전된 성남시가 생겨난 이유는 과거 이러한 지역선배들이 쌓아온 각고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그분들의 현명한 지혜와 유능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조된 혁신과 희망의 도시를 만들어 나가야만 하겠다.
<저작권자 ⓒ 경기좋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