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의회는 2024년 8월 기준,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18명,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15명, 무소속 의원이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성남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고병용 의원에 관한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성남시의회 고병용 의원은 의회운영위원회 소속이고, 중원구 상대원 1, 2, 3동이 선거구이며, 재선 의원이기도 하다.
그는 1957년에 전남 보성에서 4남 3녀 중에 6째로 태어났다.
고 의원의 아버지는 부유한 집안의 선비였지만,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제대로 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 매우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어려운 가정형편에 절대로 굴하지 않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줄곧 반장을 단 한 차례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6학년 때는 전교 어린이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에는 학생대표 선서를 할 정도로 매우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이후에도 계속 장학금을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모범생이었다.
그렇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울어, 본의 아니게 스스로 학업을 중도포기하게 됐다.
사춘기시절에 이처럼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그는 급기야 집을 뛰쳐나와 온갖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맞이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검정고시를 통해 그토록 한이 맺혔던 중, 고교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고 의원은 30살 때부터 합성비닐사업을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이 사업이 승승장구하며, 1년에 집을 2채나 마련할 정도의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또한 40대 초반에는 그나마 그가 한참 진행하고 있었던 개인사업을 등한시하며, 본인이 아주 오래 전부터 키워 온 교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결국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에 진학한다.
더 나아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마저 수료했다.
고 의원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성남산업진흥원에서 부장직무대리로 정년을 앞두고 있었던 시절에 성남시의 전반적인 업무파악을 통해, 본인이 직접 정치를 해봐야겠다는 굳건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선 시의원 후보시절부터 그는 오로지 발로만 열심히 뛰어, 2인 구역에서 가 번도 아닌 나 번으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냈다.
3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양한 봉사활동을 지난 7년 전부터는 청소업체 직원들과 함께 혹서기와 혹한기 연 2회 기준으로, 청소의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헌혈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적십자헌혈유공장도 수여받았다.
특히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는 절대로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이 모든 사항은 확고한 자기만족이자 본인 스스로와의 철저한 약속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고병용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책으로는 성남시 고령친화도시에 관한 조례, 전국에서(국회포함) 최초로 공공건축물 지하 3층 이상을 신축해야 한다는 조례 등이 있다.
그는 앞으로 성남하이테크밸리를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판교테크노밸리와의 가교 역할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켜, 성남시의 발전은 물론 성남 시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드높이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또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만인 앞에서 떳떳한 정치인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말도 함께 남겼다.
성남시의회 동료 의원 또는 다양한 성남 시민들에게 고병용 의원은 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넌지시 던져 보았다.
이때 나오는 답변은 모두가 한결 같았다.
“고 의원은 청렴결백의 상징이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이자, 잘못된 사항에 관해서는 결코 타협과 양보를 하지 않는 뚜렷한 소신과 확고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다.” 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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