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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좋은신문] 장일남 성남시의회 비례대표 의원(경제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은 1988년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동에서 1남 1녀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누군가는 “저의 부모님께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애지중지 키워 오신 소를 팔아 저의 대학등록금을 만들어주셨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그동안 수많은 희생과 헌신을 해오셨습니다.”고 회상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상당히 익숙한 단어로 느껴지는 이른 바 ‘소판 돈’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오늘의 장일남 성남시의회 의원이 있기까지,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구슬땀을 흘리며 과즙 많고 품질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안성 배’를 재배해 오셨다.
이처럼 장 의원은 아버지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헌신이 담긴 ‘배판 돈’으로 탄생했다.
아버지 얘기만 하면 또 어머니가 너무 서운해 하실까봐, 이쯤에서 잠시 장 의원 어머니에 관한 소개도 해봐야겠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 3번을 이사했다는데, 장 의원의 어머니는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1층 미용실과 2층 자택을 배우자와 함께 서로 오고가며, 두 자녀의 학업을 틈틈이 지도하면서 바른 성장을 도왔다.
여기에 더해, 두 분 부모님께서는 장 의원을 더 큰 인물로 키워내기 위해, 그의 나이 16세 때 무작정 대륙으로 보낸다.
이렇게 장 의원의 중국 정착기가 시작된다.
장 의원을 얼핏 보면, 그저 인기 많은 동네 교회 오빠 정도로 보이지만, 이 당시 친화력이 무척 강했던 장 의원은 중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조선족’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중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어 오로지 손짓, 발짓으로만 대화 나누던 그가 지금은 북경중의약대를 졸업한 상태로, 거의 중국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능통한 중국어를 구사한다.
북경중의약대 시절에 여러 지방을 떠돌며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의 의료봉사를 틈틈이 하고 있었던 장 의원은 그 당시에 환자들이 불필요한 대기시간으로 고생하는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보고 건의를 했고, 결국 그 의견이 병원 측으로부터 받아들여져 획기적인 개선 효과를 거뒀다.
이처럼 유학생활 중에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귀국한 장 의원은 제약회사 연구원 생활을 하였고, 결혼한 이후부터는 줄곧 성남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 때 본인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의 입주예정자협의회와 입주자대표회의의 임원 활동을 했고, 이외에도 희망대초 운영위원과 혜은학교 운영위원장 등의 왕성한 지역 사회 활동을 했다.
이와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성남 수정 지역청년위원회에서 다년간 활동하면서 정치인들과 지역 현안을 서로 함께 해결해 나가던 중에 자연스럽게 그도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다.
장일남 의원은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정책은 완성된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반드시 이에 걸맞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싶습니다.”며, “성남시에 저출산 정책은 많이 있지만, 결혼 이후 자녀들의 양육에 대한 정책이 몹시 미흡하다고 생각되어 이번에 제가 그에 관한 조례안을 기획하였습니다.”는 야심찬 각오를 밝혔다.
이로 인해 그가 최초로 기획한 의안발의서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성남시 종량제봉투 관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성남시에 부 또는 모가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고 자녀가 2명 이상이며, 그 중 18세 이하인 자녀가 1명 이상 포함된 다자녀가정에 가구당 매월 120리터 범위 내에서 지급한다.
다만, 1인 가구에 대해서는 월 60리터 범위 내에서 지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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