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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좋은신문] 임원규 성남시의회 의원은 1958년 2월 19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향면에서 2남 3녀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에 임 의원의 아버지께서는 거대한 광산을 운영하는 경영주이셨으므로, 그는 어릴 적부터 ‘가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르고 살았다.
쉽게 말해, 임 의원이 어린 시절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삼시세끼는커녕, 따뜻한 쌀밥 한 끼조차도 제대로 못먹고 살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 의원의 경우 대낮처럼 환한 전깃불 아래서 텔레비전을 보며, 하얀 쌀밥에 고기를 곁들여 먹을 정도로 매우 부유한 생활을 했다.
그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마저도, 저녁때만 되면 동네 사람들이 당대 초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여로’를 보기 위해 임 의원의 집으로 모두 모여 들었다.
고교시절에 임 의원은 강릉상고로 진학하여, 그곳 현지에서 본격적인 하숙생활에 돌입해 나갔다.
지금 현재까지 생존해계시는 임 의원의 고교 담임 선생님은 아직도 그 당시를 회상하기라도 하면, 혀가 절로 내둘릴 정도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 색이 강한 강릉의 다수 학생들이 경북 봉화에서 온 임 의원을 그저 쉽게 가만 놔둘 리가 만무했다.
이에 굴복하기 싫은 자존심 무척 강했던 임 의원은 허구한 날 싸움박질 하기 일 수였고, 이러다 보니 결국 그는 고등학교 재학을 남들보다 좀 더 긴 시간인 4년 만에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는 육군 하사관으로 자원입대하여, 제2하사관학교(전북 여산 위치)에서 6개월간 정규 훈련과정을 거친 이후, 전남 광주에 있는 육군 제1보병 31사단으로 자대배치 됐다.
이후에는 공교롭게도 1980년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악몽의 시간이 펼쳐졌다.
이 시기는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했었던 전, 후 시기였는데, 임 의원은 본인의 자유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계엄군으로 착출되어 엄청난 시련의 과정을 겪었다.
이처럼 우리 대한민국 비운의 역사 중에 하나인 5.18민주화운동은 당시 시민과 군인 모두 절대로 또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끔찍한 기억과 커다란 상처만을 남겼다.
임 의원의 경험담에 따르면, 당시 머리 위로 총탄이 빗발치는 긴박한 상황이다 보니, 6개월간 목욕은 둘째 치고 24시간 내내 워커 한번 제대로 벗어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불행한 군 시절을 보낸 뒤에는 1983년에 성남 계림상고 교사로 부임하였고, 성일상고(현 성일정보고)에서 2015년 명예퇴직을 할 때까지 그는 성남에서 33년이라는 기나긴 교직생활을 이어나갔다.
아울러 또한 성남에서만 지금까지 줄곧 44년을 거주해 온 터줏대감이다.
교직생활을 그만 둔 이후에도 임 의원은 성남시체육회와 성남시장애인체육회 부회장, 민주평통 성남시협의회 부회장과 국민의힘 경기도당 부위원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성남 지역사회 발전의 근간을 이뤘다.
“임원규 시의원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라는 물음에 성남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제가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매우 오랜 시간을 지켜봐 온 임원규 시의원님은 동네 형님처럼 무척 편안하고 다정다감하신 분으로,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진정한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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